
여백속의 대화
하랑 | 297mm * 420mm |패브릭에 디지털 일러스트
‘쉼’이라는 단어가 없는 삶. 내 인생은 그런 삶이었다. 잠시의 공백도 허용하지 못했던 나는 언제나 도전하는 삶을 살아야 했다. 하지만 그만큼 실패도 많이 찾아왔다. 실패와 좌절은 나를 못난 사람으로 만들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또 무엇인가를 해야만 했다. 내가 가는 길이 어디인지도 모른 채 나는 달리고 넘어지기를 반복했다. 남들의 눈치를 보면서도 정작 내가 넘어져 다친 상처에는 무심했다. 강한 사람이 되려면 작은 상처에 힘들어하지 않고 달려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강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렇지만 나는 작은 것에도 쉽게 상처받는 사람이었고, 그 상처들은 곪아서 나를 울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달렸다. 쉼 없이 달려가던 나를 기다리던 건 다름 아닌 내리막길이었다. 이미 많이 약해진 나는 저항 없이 굴러 떨어졌고, 그만큼 더 심하게 다쳤다. 그렇게 모든 게 무너졌다.
너무 아파서 이제는 다 그만두고 싶어서 모든 걸 포기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포기를 결심하고 나서야 내 상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성한 곳 없이 상처뿐인 몸. 나는 이렇게까지 달리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스스로를 상처 입히고 치료해 주지 않은 내가 미웠다. 나는 왜 상처뿐인 달리기를 했을까? 그 질문의 답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내가 왜 달리고 있었을까? 지금의 나를 만든 선택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끝엔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었다. 나는 잘 살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기회를 박탈당하고 실패를 경험할수록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은 흐려지고 고통만이 남아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그 고통을 느끼는 이유 역시 내가 잘 살고 싶어서였다. 나는 잘 살고 싶었다. 살고 싶었다. 인생을 이렇게 끝내고 싶지 않았다.
강한 사람은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상처를 보고 치료할 줄 아는 사람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선택을 하기로 했다. 내 인생에 ‘쉼’이라는 단어를 적어 보기로. 꽉꽉 채워진 나의 길에 여백을 남겨 보기로. 이 여백 속에서 나는 나를 보살피고 상처를 치료해 줄 것이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들어줄 것이다. 그렇게 나와 대화를 나누다 상처가 다 아물면, 그때는 걷던 길을 다시 걸어 볼 것이다.
<여백 속의 대화>를 통해 인생에 쉼을 적어보는 여성들이 많아지기를. 스스로와 대화를 나누며 나를 돌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